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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엄마와 오이지

by 나경sam 2024.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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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해 주는 김치로 아직도 살고 있는 쉰 중반 아줌마로서 김치 담그기는

이번 생에서는 패쓰해야 되는 어려운 일이 되었다.

 

"열무 김치는 그까이것, 나물 무치기보다 쉬운 거야" 하는 우리 성당 레지오 단장님의 말을 들으면 김치 못 담그는 내가 완전 바보같다가도, 엄마가 담궈 주면 되니까 됐어 하는 우리 엄마 소리를 들으면 김치는 평생 엄마한테 기대서 얻어 먹어야 되는 음식같으니 김치는 아직도 나에게는 해결 못 하고 있는 음식 숙제다.

 

일본 간다했을 때, 애들 놔두고 미쳤다고 했던 엄마다. 남편두고 어딜 가냐고 하지 않고 엄마가 돼서 애들 두고 어딜 가냐고 했던 엄마다.

우리 애들은 스물 다섯, 스물 하나, 스무살이었으니 다 키워 놓은 거 아니가 했는데도 엄마가 집에 있어야지 어딜 가냐고 하여간 우리 엄마 생각은 그랬고 아마 시어머니는 당신 아들 밥 어떻게 먹으라고 며느리가 미쳤나보다 하셨을거다. 


소금물에 짭쪼름하게 절여진 오이지를 무쳐서 찬 보리차 물에 밥 말아 밥 한숟갈 뜨고 오이지를 올려 먹는 걸 좋아한다. 오이지도 못 만드는 주제에 말이다.

여름만 되면 오이지 담가 준다고 얼만큼 해서 줄까 하고 묻는 엄마에게 됐다고, 우리집에서 오이지는 나만 먹는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엄마는 오이지 협상에 들어간다.

사실 엄마의 오이지가 해마다 성공을 하는 것도 아니어서 어느 해인가 엄마가 담궈 준 오이지는 너무 짰다.

엄마의 넘치는 사람만큼 짰던 오이지는 결국 물에 담궈놔도 빠지지 않는 짠맛으로 다 먹지도 못하고 버렸다.

물에 아무리 담궈놔도 빠지지 않는 오이지의 짠 맛처럼 부모의 사랑도 그런가보다.

아무리 희석시킬려고 해도 빠지지 않는 징글징글한 짠맛같은 게 부모 마음같다.


어제도 전화가 왔다. 해마다 여름맞이 오이지 대화다.

엄마 : "내일 아침 새벽 시장 갈 건데 오이지 몇 개 담글까"

나 : (소리를 질렀다) "안먹어 안먹는다고, 제발 담그지 마"

엄마 : (기가 죽으셨다) "서른개 얼마 안되는데 서른개만 담글게"

나 : "나만 먹는다고 그러니까 엄마, 하지 말라고"

엄마의 오이지는 그때 그때 맛이 달라 너무 짜서 못 먹고 버린적도 있다고 차마 바른 말은 하질 못 하고 이제 그만 담그라고 했더니 완전히 기가 죽어서 전화를 끊으셨다.

마음이 편치 않아 다시 전화를 했다.

나 : "그럼 이번에는 진짜 조금만 담어. 서른개만..."

엄마 : "알았어"

완전 신이 난 엄마는 저녁부터 새벽을 기다렸다가 새벽 시장으로 오이를 사러 갈 거라고 했다.

서른개가 백개가 될 엄마의 오이지는 벌써부터 공포스럽지만 그게 우리 엄마다.


2018년 일본가서 일 년동안 공부하고 올게 했을 때 엄마는 미쳤다, 애들 엄마가 무슨 공부를 도 하러 가냐 내가 너를 대학을 안 가르쳤냐 고등학교를 안 보냈냐 별 소리를 다하면서도 반찬을 만들어주셨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며칠동안 고심하면서 만드신거다. 오래두고 먹어도 질리지 않고 비교적 덜 상할 음식으로 만든게 엄마의 반찬 3종 셋트다.

 

들기름 묵은지 볶음과 멸치 볶음 장조림으로 구성된 엄마 반찬 3종 셋트는 함께 가지고 간 김과 함께 국물까지 싹싹 먹으면서 생애 처음 혼자 살게 된 교토에서의 2018년 4월을 보내는 에너지가 되어 주었다.

 

반찬 뿐인가. 엄마는 3일 견디면 일주일이 쉽고 일주일 견디면 한 달이 가고 한 달 잘 보면 일년간다고 믿는 날짜 신봉주의자여서 엄마 말을 새겨가면서 3일 견뎌 일주일 견뎌 일 년 견디고 교토에서 혼자 공부하면서 지낼 수 있었다.

 

오사카에 큰 지진이 났을 때 하필 그 때 나를 보러 교토에 왔던 엄마는 그때도 반찬을 공항 검색대에 걸려서 몇 번이고 다시 풀렀다 샀다 할 만큼 군산 집에서부터 반찬과 공산품을 이고지고 오셨다.

엄마가 들고 온 김치는 하마다상에게 나눠 줄 만큼 양이 너무 많았었다.

샴푸 살 돈도 아끼라고 군산 집에서 치약과 샴푸까지 가지고 온 엄마가 그렇게 이상하지도 않았다.

엄마는 그런 짠 맛이 있는 사람이다.

 

반찬 한 번 해서 보내면 당근에 내다 팔아도 될 만큼 종류와 양이 많고 먹고 싶은게 있다고 말 하면 벌써 불 앞에 서 있는

바지런함이 있어서 우리는 어릴 때 말만 하면 먹고 싶은걸 원없이 먹고 살았다.

나도 엄마 닮아서 애들이 먹고 싶은 걸 말하면 귀찮아하지 않고 해 주는 편이지만 우리 엄마만큼은 아니다.

엄마의 발 뒷꿈치도 못 따라간다. 그게 우리 엄마다.

 

어느 해엔가 엄마가 싸서 보내 준 반찬들, 우리 식구는 아마 다 못 먹었을 반찬들이다. 곰국까지 끓여서 얼려 보내 준 엄마를 생각하면 잘해드려야지 하면서도 오이지 담궈 준 다는 말에 살갑게 대답을 못 하는 나는 친 딸이 맞는 것 같다.

 

 

엄마가 내 년에도 건강하게 지내시는 한 여름마다 모녀 간 오이지 대화는 계속 될 것이다.

 

엄마 : "내일 아침 새벽 시장 갈 건데 오이지 몇 개 담글까"

나 : (소리를 질렀다) "안먹어 안먹는다고, 제발 담그지 마"

엄마 : (기가 죽으셨다) "서른개 얼마 안되는데 서른개만 담글게"

나 : "나만 먹는다고 그러니까 엄마, 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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