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집으로 돌아왔다. 결혼 생활 올 해로 30년, 주말 부부로 떨어져 지낸 게 10년쯤 되나보다.
거리상 월말 부부로 지냈어야 했을 거리도 남편은 악착같이 주말이면 집으로 올라왔다.
지구둘레를 떠나지 못하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궤도를 그리며 돌고 있는 달 처럼, 남편에게 집은 지구였고 떠나지 못하는 우주였나보다.
남편이 지구라 믿고 있는 그 곳에는 이상한 외계인 넷이 살고 있다.
부인이라는 이름의 외계인 하나와, 자식이라는 외계인 셋이 사람인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 집, 남편은 착실하게 주말이면 집으로 올라왔다가 일요일 저녁, 혹은 월요일 새벽에 직장으로 출근을 했다.
월요일에 가는 날에는 미안하다고 하면서 내려 갔다. 자기 집인데 하루 더 있다가는 것을 미안해했다.
낡은 주택이라 남자가 할 일이 많아서 주말에는 하수구 손 보는 일부터 봄되면 옥상 상자 텃밭 가꾸기, 저녁 늦게 귀가하는 딸 데리러 새벽에도 딸이 내리는 정류장으로 운전하고 나가는 일까지 남편의 일은 주중에 내가 했던 일보다 양이 훨씬 더 많았다. 냉담신자임에도 성가대 총무인 내 일을 도와 반은 자기가 총무인 것처럼 도와주었고, 합창단 간식 일을 망설임없이 수락한것도 남편이 뒤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무슨 죄를 그리 지어서 헌신하는가!
스페인 여행 중에 카톡이 왔다. 집으로 올 수 있다고. 스페인 세비아 대성당에서 1유로 넣고 촛불을 켜고 했던 기도는, 남편이 집으로 오게 해주세요 가 아니었는데 하늘에 전달이 잘못 됐는지, 어찌됐든 남편은 발령이 났고 이제 버스를 타고 출 퇴근을 하게 됐다.
남편 " 발령났어. 집에서 다니게 됐어"
나
눈물로 물대포를 쏘는 이모티콘을 보냈던것같다. 하하하
남편 "저녁이 있는 삶이 시작됐어"
나 "고뤠, 나는 저녁밥이 있는 삶이 시작됐네"
가는 길에 들를 수 있는 트레이더스는 아마 나를 위해서 오픈했나보다. 어제는 코다리찜 밀키트를 사다가 매워 죽을 것 같은 코다리 찜을 해 놓았다. 맵다 맵다 하면서도 아침에 보니 코다리의 반은 이미 식구들이 먹었고 남은 코다리는 오늘 저녁 남편의 저녁 밥상이 될 것이다.
큰 애 네 살 때, 대전 선화동 집에서 둥근 밥상을 펴놓고 셋이 먹는 저녁밥이 맛있었다.
SBS에서 했던 아빠의 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지하철 노선 외우기라든가, 뭔가 하찮은 듯하면서도 심오했던 아빠의 도전을 보는 게 저녁밥 먹을 때 즐거움이었다.
식구는 늘었으나 저녁밥을 함께 먹는 식구는 남편과 나 둘일때가 다섯일 때보다 훨씬 더 많다.
언젠가는 둘이 먹던 저녁밥도 혼자 먹을 때가 분명히 올 것이다.
저녁이 있는 삶과 저녁밥이 있는 삶은 하루를 그럭저럭 잘 살아 낸 사람에게 건네지는 선물같은 보상이니 저녁밥을 하게 됐다고 해서, 투덜대지 않기. 언젠가는 그리워지는 날들이 될 것이니.
우리는 돌고 돌아 다시 밥상에서 얼굴을 맞대고 밥을 먹는 사이로 돌아왔다.
10년 걸렸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탁구! (4) | 2024.02.05 |
---|---|
날이 좀 풀려서... (3) | 2024.01.27 |
스페인 여행, 어디까지 준비해봤니 (5) | 2024.01.19 |
여행은 선물을 싣고 (2) | 2024.01.19 |
잘있어, 에스파니아 (113) | 2024.01.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