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아들"
큰 애를 낳고 키우면서 남편도 나도 부모가 되는 연습을 시작했고 이후로 둘째 셋째를 키우면서는
좀 익숙해져갔었다.
아이를 낳고 보니 얼마나 황당하던지-.-
밤에 한 시간 반 간격으로 깨서 분유를 먹거나 밤에도 응가를 하거나 한 번 울면 숨이 넘어갈것처럼 울거나
한 달에 한 번씩 감기에 걸려서 병원을 다녔고 돌 무렵에는 장염으로 대학 병원에 입원까지
둘째와 셋째를 키우면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육아의 각종 사례들을 큰 아이때 경험했다.
나는 큰 애가 백일이 될 때까지 시달려서
내 인생의 최저 몸무게를 그때 찍어봤다.
남편은 그때 밤에 안자고 우는 아이를 얼마나 잘 보살피고 챙겼는지
자기를 잘 보살펴준 사람이 엄마가 아니라 아빠였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
큰애는 아기였을때는 보통 다른 아이들이 엄마하고 애착관계가 형성이 되어서 엄마하고 떨어지는 걸
싫어하거나 울곤 하는데 우리집은 달랐다.
큰 애가 다섯살때 살 던 대전 선화동 2층집에서는 아침마다 이랬다.
아침에 출근하는 아빠를 보면서 서럽게 울어대서 출근하는 남편대신 내가 나갔더라면 아마 우리 아이는 더 좋아했을것이다.
그때 살았던 대전 선화동은 오르막과 내리막 길이 언덕처럼 연결이 된 동네였었는데
일요일면 파란색 리틀 타익스 지붕차에다 아이를 태우고 남편은 그 언덕길을
밀고 다녔다.
원래는 실내에서 타고 노는 자동차였는데 밖에서 타면 더 재미있다고 아이랑 나가서 그걸 동네 챙피한 줄도 모르고
뒤에서 밀고 다녔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애에게 사랑을 쏟았다고 해도
큰 애로 태어난 불리함과 다른 아이를 본 경험이 없이 처음 부딪치게 되는 육아와의 사이에서
큰 아이가 갖는 위치적인 불리함이 없을 수는 없었을테고
어쨋거나 큰 아이는
잘해도 "본전"이다.
나도 큰 딸이었으니 그 느낌을 잘 알고 남편도 큰 아들이니 잘 알것이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도 다정하던 아들이
커가면서는 서운할 때가 많았다.
남편이 출근하느라 뒷 모습을 보이기만 해도 숨넘어갈것처럼 울 던 아이가 어느새는 커서
아빠가 들어 오는지 나가는 지도 모르고
크고 작은 일들이 아들에게는 잔잔하게 있었다.
아들을 키우는 일은 만만치가 않구나를 알 수 있었다.
딸만 둘을 키웠더라면 몰랐을 육아의 폭 넓은 세계를 아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으니
어쩜 큰 애는 나를 조금은 깊이 있게 만들어 준 은인일수도 있다.
아빠를 그렇게 좋아하던 어린 시절의 우리 아들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가끔 남편을 서운하게 했다.
우리가 우리 부모를 그렇게 서운하게 한 것처럼
우리 아이도 똑같이 말이다.
그래도 내가 집에 없으니 아들이 집에서 아빠를 잘 챙기고 있는 것 같다.
엄마가 빠진 자리만큼 아빠와 관계가 더 좋아지는 것같다.
둘이서 야구를 보러 갔다.
나도 중학교때 아빠랑 해태 타이거즈 야구를 보러 갔었다.
비가 오던 그날 소나기를 맞으면서 아버지랑 야구를 봤었고
티비에서 볼 때는 해설이 나와서 잘 알 수 있었는데 막상 야구장에 가서 보니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어쨌든 해태가 져서 실망하고 돌아 오던 그 때 선수단 버스에 타고 있던 야구 선수들을 본 것만으로
그날 비를 맞고 야구를 봤던 실망감이 싹 사라졌었던 중학교때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아버지는 돌아가셨어도 그런 추억은 언제까지나 남아 있다.
남편과 아들에게도 야구장에서의 함께 한 시간이 그런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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