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 (쩜쩜쩜 소동)

나경sam 2025. 7. 8.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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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완전히, 퇴직을 했고 이제 그의 월급은 끝났다. 종이로 월급 명세서 받던 시절 하나씩 모은던 남편의 월급 명세서가 앨범 한 권에 가득찰 때만 해도 언젠가 이게 끝이 날 일이라는 걸 몰랐다.

한없이 젊을 줄 알았고, 언제까지나 서른 몇 살로 머물러 있을 줄 알았는데.... 그는 환갑이 넘었다.

제주도 살 때 남편은 마흔이 되었다. 마흔이 된 거냐고 내가 놀렸었는데 이제 우리들의 마흔살은 애기때였던것처럼 되돌아봐지니..

훅 가버린 금쪽같은 시간들은 우리 애들이 잘 크느라 지나간 걸로 위로받고 싶다.

 

시간은 아버지도 데려갔고, 남편을 퇴직 시켰고, 총명함이 아무도 부럽지 않던 나는 점심 때 먹은게 저녁에 바로 기억나지 않는 아줌마로 바꿔놨다.

괜찮다. 시간은 그러라고 있는 것이고 제 할일을 제대로 한 거다. 

 

이십 몇 년 전, 남편이 아직 직장 애송이었던 시절, 한동네 살던 남편의 직장 상사였던 분을 우연히 은행에서 만났었다.

그때 그 분 나이가 지금 남편 나이였을것이다. 큰 애가 아직 초등학생도 아니었을때였었나. 큰 아이한테 용돈을 주시던 그 분이 내 눈에는 할아버지같았었는데 이젠 내 남편이 젊은 사람 눈에 그렇게 보일것이다. 

 

낯을 심하게 가리던 큰아이는 낯선 사람들과 낯선 환경에서 지금까지 해 오던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을 시작했고 둘째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답을 찾아가고 있다.

셋째는 찹쌀풀 될 것 같은 날씨에 개인 400에서 금메달을 땄다.

셋째 금메달 기사

 

셋째는 집에서는 혀가 짧아지는 어린냥쟁이지만 트랙에서는 근성있는 육상 언니가 되었다. 애들이 이렇게 컸으니 남편 퇴직은 당연한 거고 내 얼굴에 보이는 늙음도 당연한 일인데 벌써 이런 나이가 되었나.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얼핏 본 남편 얼굴 주름이 깊어져 있을 때, 사진으로 본 내 모습이 빼박 중년 아줌마일때, 생각한 것들이 단어로 바로 튀어 나오지 않을 때 살짝 서글프지만

아이들이 아빠 생각 끔찍하게 하는 따뜻한 아이들로 자란 것이 감사한 일이다.


어제 남편은 새로운 일에 도전! 선언을 하고 출근을 했다. 책상에 앉아서 하던 일이 아닌 전혀 다른 세계의 일을 하러 마음 굳게 먹고 나갔다. 당연히 바쁘니까 전화 통화가 될 리가 없지만 점심 시간에 통화를 해도 연결이 안되니 답답했다.

 

아이들한테 카톡을 이렇게 보내긴 했지만 장난같은 마음도 좀 있었는데 애들은 걱정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저녁 때 둘째가 일찍 들어오면서 맥주 4캔을 사들고 왔다. 아빠 고생 많았다며 엄마가 카톡을 저렇게 보낼 때 마다 얼마나 걱정한줄 아냐며, 특히 쩜쩜쩜 ... 을 문장마다 붙여놔서 더 걱정이 됐다고 했다.

아 증말, 피의 끈끈함이라니. 둘째와 남편은 맥주를 마시면서 마음과 몸이 고단했을 하루를 정리했고 나는 자식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받는 남편이 인생을 잘 산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퇴직했지만 자기가 돈 벌어다줄테니 아빠는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둘째가 있어서 마음이 행복했을것이다.

 

이제부터는 쩜쩜쩜...은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애들이 걱정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