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정신을 차리자!

나경sam 2023. 12. 12.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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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하루 이틀 없었던 건 아니다.
신혼여행 다녀 오면서 뭉칫돈이 들어 있던 가방을 택시 안에 두고 내린 게 시작이었다.
100만원, 1994년에는 굉장히 큰 돈이었다. 섭섭 월급이 100만원 안되던 섭섭하던 시절이었으니
절값으로 받았던 100만원이 얼마나 컸을지 우리 애들도 상상 안될 것이다.
지금 100만원은 10만원 같지만 그때 100만원은 우리에게는 천만원 같은 돈이었다.
그걸 두고 내렸고 핸드폰도 없던 꼰대라떼 시절에 착하신 택시 기사님이 연락해줘서 그 분 댁에 찾아가서 돈을 찾아 왔으니
나의 건망증은 오래 됐구나.


애 셋 낳아 기르면서 머릿속의 회로도 엉켜가는지 건망증이 무서울만큼 심해져서 이제 멀티는 안된다.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하나는 처리할 수가 없다.
멀티가 안되는 과거 멀티 아줌마, 세 개 네 개 뭐든지 들어오기만 하면 처리하던 만능 멀티 아줌마는 죽었다.
슬프지만 과거의 영광이고, 한 번 읽고 쓴 것은 머리에 새기고 가슴에 새겨서 신동소리를 듣던 찬란한 과거가 있으면 뭐하나, 이젠 돌아서면 잊고 가끔은 점심 먹은 메뉴를 저녁에 기억하느라 애쓴다.
슬프고도 슬프지만 이것도 삶의 단편이라 생각해야 되나. 아무튼 슬프다.


남편 발령따라 전국구 이사, 대전, 대구, 전주,제주,춘천,수원 꼰대라떼 시절에는 이사가면 자동차 등록사업소에 가서
번호판을 바꿔달던 시절도 있었으니 그 시절 아줌마는 아기 시트에 큰 애 태우고 핸드폰도 없고 네비도 없던 시절에 혼자서 자동차등록사업소에 운전하고 가서 번호판 교체하고 전입신고도 혼자 동사무소 가서 하고 남편없이 혼자사는 사람처럼
모든 일을 처리했었는데, 이제 남편없으면 찾아가는 음악회에  단복도 빠뜨리고 가는 모질이가 되었다.
내 인생, 이렇게 될 줄 기억력이 무섭게 있을 땐 몰랐다. 그래서 인생 오만하게 살 수 없다. 큰 깨달음일세.


생각이 많아서가 아니라, 산만해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 혼자 사는 집이 아닌 다가구 주택 끌어안고 사는 복잡함과 월급 받고 사는 일의 머리 아픔, 맡고 있는 일들에서 챙겨야 되는 부분들, 내 자식 새끼들과 남편 입에 들어 갈 먹을거리까지, 어느 것 하나 편히 넘길 수 있는 것들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진심으로 마음을 담아 나에게 말했다.
'그렇게 살지 말어' 남편도, 소피아 언니도 그렇게 말해줬지만 사람이 쉽게 변하냐. 나는 나더라 이 말이지.

정신을 차리자

수첩에 적어 놓고 내일 일을 잊지말자 다짐을 하고 적어 놓은 수첩을 안봤으니 어쩔꺼야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서 머리를 빠글빠글, 동네 할머니들 단골 미용실에 가서 백년이 지나도 안 풀어질 것 같은 뽀글이 파마를 했다.
절치부심, 건망증으로 겪는 스트레스를 잊지 말자라는 의미로 머리를 볶았으나 돌아오는 건 학교에서 인사도 하지 않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면서 말을 건넨다는 부작용으로 돌아왔으니!!
 
교장 선생님:  (허걱) 머리 하셨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나 : (씨크하게) 네, 아주 잘 나왔죠. 머리요. 

쉿!

제가 머리 지지고 볶은 걸 알리지 말아 주세요. 했으나 나의 머리는 워낙 파격적이었으므로 온 동네가 다 알고 학교가 다 알고 합창단에서 인사도 잘 하지 않던 베이스 아저씨까지 아는 척을 했다.
 
사실은 이나가키 에미코의 머리를 하고 싶었으나 이나가키 에미코는 머릿숱이 많고 나는 적기 때문에 절대로 이 여자의 머리처럼은 안되었다.

 
건망증의 치욕을 머리에 풀고자 지지고 볶긴 했지만 나름 스타일이 바뀌니까 스트레스 해소에는 짱이다 싶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자!! 얘야. 아니 이 아줌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