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단복 공수 작전
살다보면 정신이 제법 야무지게 나가는 날이 있다. 두가지 이상의 일 진행 시 멀티 기능 고장으로 회로가 엉키는 날이 많아졌는데, 올 해 더 그런다. 그리하여 나에게 11월 25일 그런 일이 일이 났다.
우선 챙겨주는 남편이 없었고, 일이 꼬일려니까 아랫집 공사 날짜가 하필이면 25일이었다.
그리고 더 꼬일려고 그랬는지 추가 공사가 발생하여 나는 7시부터 3자 통화를 했던 것!! 아니 5자 통화였다.
나. 202호 아줌마. 인테리어 아저씨. 남편, 우리집 고쳐주는 설비 아저씨
나는 다섯과 아침부터 통화를 했으니 머릿속이 엉킬만도 했다. 그렇게라도 말해야 좀 위로가 된다.
202호 아줌마 "잠깐 내려와 보세요. 천정이 엉망이라 목수가 와서 공사 후에 도배 해야 된다고 하는데"
나 "알겠어요. 잠깐만요"
상태 확인 결과, 목수가 와서 목공 공사를 해야 된다는 결론, 목수 인건비는 이미 경험해 봤지만 그분들 인건비는 노가다 임금의 꽃이다. 속이 쓰리지만 언제나 생각한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도의 일은 힘든것이 아니다. 라고 말이지.
아랫집 두 번 왔다 갔다 하고 인테리어 업체 사장이랑 전화하고 견적 뽑은 다음, 쉬러 집에 와 있는 셋째 김치 볶음밥 만들어 놓고 여주 성당으로 출발했다.
아들, 딸, 나 모두 같은 곳에서 함께 하는 연주라 마음이 바빴는데 아랫 집 일로 더 바쁜 아침이었다.
악보와 단복도 챙기기!!!
얼마 전 아이들에게 선물받은 머플러가 담겨있던 루이비통 쇼핑백에 자랑스럽게 담아 놓은 단복과 함께 이제 여주 성당까지 가면 된다. 그렇게 집은 돈으로 맡겨놓고 출발- 2시간 후 여주 성당 도착. 사건은 지금부터다.

야. 좋다 도착했어, 내려 은진아
그런데 뒷 자리에 악보 가방만 있고 단복 가방이 없네. 니네 엄마 드디어 미쳤나보다. 은진아 앙앙앙

여주성당 마당에서 정신 나간 얼굴로 신부님과 지휘자 선생님 함창단 단장님을 쓰리 콤보로 만났다.

지휘자 선생님도 단장님도 그럴수 있다며 충분히 이해한다고 토닥거려 주셨지만 창피하고 부끄럽고 모든 사람에게 폐를 끼친 것 같아, 진짜 그 당시에는 오디션 보고 들어 간 합창단이지만 그만 두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집에는 삼성전자 미래 전략실 기획 실장 부럽지 않은 유은진 실장님이 계셔!

엄마 잠깐, 수민이 시키면 돼. 걱정마.
전화 - 야 셋째, 엄마 단복 갖고 지금 바로 여주로 와.
오빠 너는 여주 터미널에 수민이 도착하면 대기하고 있다가 여기로 데리고 와.
엄마는 걱정말고 있어.
그리하여, 우리집의 육상 선수 실업팀 선수는 3번 버스가 4분 남았다는 언니의 지시에 미친듯이 뛰어서 집에서 내려가 4분 남은 3번 버스를 달려서 잡고, 아주대 삼거리에서 언니의 2차 지시를 받고 여주까지 오는 버스를 탔으며 이천 아이씨 진입해서는 3차로 승범이를 출동시켰고, 연주 전 무사히 단복을 받아 연주에 설 수 있었다.
앵콜곡 닐리리맘보를 부르기까지 은진이는 리허설 틈틈히 셋째에게 지시를 내렸고, 셋째는 그대로 따라했으며
승범이는 괜찮다고 걱정말라고 해줬다.
자랄 때 형제가 다섯이라 우리 엄마는 비가 와도 한 번도 우산 들고 교문 앞에 서 있었던 적이 없었다.
"엄마는 왜 우리가 비 맞고 오는데 한 번도 우산 들고 오지 않아" 화가 나기 보다 서운했었다.
어린 마음에도 옹이처럼 박혀 있던 그 마음이 우리 애들 셋이 내 옷 가져다 주는 걸로 최선을 다 한 하루에 없어져버렸다.

맥주 2, 하이볼 1, 밀키스 1로 짠하고 남편이 없는 뒷풀이
연주 끝나면 꼭 한잔하는 아들과 딸을 뭐라뭐라그랬는데 이제는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
보여지는 무대 뒷 모습을 겪고 나니 술 한잔을 안 마실 수가 없다.
모든 것이 무사히,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