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우리들의 블루스

나경sam 2023. 10. 1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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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부부 개근상 대상자인 남편이 집에 못 올라오는 날은 일 년에 다섯 번도 안된다.

모임의 회장으로 주관해야 되는 모임이 있거나, 시댁 행사에 본인만 다녀 오느라 근무 끝내고 혼자만 가거나 할 때이다.

고생 혼자 하면 되지, 뭐하러 당신까지 가느냐고, 말해주는 남편이 서른 하나에 그런 소리를 했더라면

나는 그를 자식인듯 정성을 다 해 키웠을 테지만, 그때는 그런 말 할줄도 몰랐고 생각은 더욱 못했던 멍충이 시절이었다.

 

늙어서 철이 났고 세상 물정을 알았으며 시부모가 힘든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시댁에 혼자 갈 수 있으면

혼자 가고, 나한테 힘들게 하지 않으려는 엽렴함이 이제는 생겼다.

그리하여 이번 시아버지 생신에는 남편 출석, 큰 며느리 결석. 물론 세상 고집불통에 무엇과도 타협할 줄 모르는

천하무적 시아버지도 나이드시면서 추석과 이주 정도로 붙어 있는 본인 생신에 내려 오지 말라는 자상한 말씀을

하시기는 했다. 그 정도만 해도 우리 시댁 역사로 보면 갑오개혁 정도의 어마어마한 일이다.

하지만 갑오개혁이 삼일천하로 끝난 것 처럼 아무 의미는 없다. 

어쨌거나, 일 년에 다섯 번도 안되는 남편없는 주말을 보냈다.

 

뭐했냐구???

우선 성당 아줌마들과 대낮 옥상 와인 파티를 했다.

마주앙 미사주와 한우로 와인 파티

시작은 마주앙 미사주 한 병이었으나 

루시아 "뭐야. 언니야. 마시다 만 것 같다"

나 "하하하, 그럼 안돼지. 기다려 봐. 얼른 술 가져올게"

고창 복분자 와인, 마시다 남겨 놨던 거 탈탈 털어 빈 병 만들고, 1차 옥상 대낮 이자카야는 마무리하고 집 안에서

날라리 핸드드립 커피로 2차 토크 후에 헤어졌다.

한우는 은지니가 가르치는 학생의 어머니가 추석에 선물로 보내준건데 정작 받은 사람은 바빠서 못 먹고

우리가 다 먹어버렸다. 굉장히 쏘리. 은진


연주에 바쁜 딸은 요즘 다른 때보다 더 바빠보였다. 아들 딸 열 두시 넘어서 들어 오는 게 우리집 일반적인 귀가시간이라서

앉아서 이야기 할 시간도 없었다.

내가 집에 들어갔는데 아이들이 먼저 들어와있으면 이젠 허걱 하고 놀라게 된다. 어제 허걱했다.

딸 "요즘 너무 힘들었어. 아침에 나가는데 진짜 축 처지고 지치더라고"

나 "그래. 그럴만했지. 연주에 렛슨에 얼마나 힘들어."

딸 "그런데 어깨 축 처져서 걸어 가는데 알림음 뜨더라고. 연주비 입금됐다는"

나 "그래. 좋지"

딸 "진짜. 기운이 빡 나면서, 기분 좋더라고. 그리고 쌍둥이 렛슨도 들어와서 완전 좋았어"

나 " 그래. 금융치료가 제일 좋지"

 

입금 전

입금 전 처져 있던 어깨가 입금 후 쫙 펴져서 신나게 걸을 수 있었다니 딸에게는 금융 필라테스 효과

나는 결석한 남편으로 인한 낮술 효과로 즐거운 주말을 보내서 또 한 주 쭉 가는 힘을 얻고

이런 것들이 다 우리들의 블루스지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