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연휴생활
부모님이 살아계셔서 찾아가서 뵐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슴이 빠개지는 듯 한 깊은 슬픔을 느낀 후 살아계실 때 잘하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래도 잘안되는게 살아계시는 부모님을 대하는 마음이니 효도는 타고나야 하는 것인지
섭섭씨나 나나 부모에게 잘하는 옳은 사람들이 아니라 한 번 내려가는 일이 수원에서 익산까지인데도
힘이 든다.
가야되는곳이 시댁일 때는 친정보다 더하니, 좋은 큰며느리는 절대로 아니다.
시댁에 갖고 갈 등심 한 쪽, 장어구이 한 팩, 국거리 한 팩 사서 사모님처럼 섭섭기사를 부려먹으면서
내려갔다. (우리 애들 줄 거는 몇 팩씩 사면서 시댁 갈 때는 완전 작은손 아줌마가 나다)
나 '아이구 힘들어 힘들어,시댁 가는 일은 언제나 힘이 드는 구나, 섭섭기사'
섭섭군 '그렇지, 힘들지.알어 알어'
특별한 말이 사람의 마음을 위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알어, 알어, 그럴거야" 그렇게 말해주면 끝난다.
섭섭은 그걸 잘 알고 그래서 '알어, 알어'를 터뜨려주면서 적당히 북치고 장구치면서 하나도 심심하지 않게
시댁에 도착해서, 대문 앞에서 심호흡 한 번 하고 가짜 미소와 가짜로 즐거운 마음으로 변속기어 넣고
활짝 웃으면서 들어갔다.
'어머니, 저 왔어요. 어머 동서도 와있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선거나갈 아줌마처럼 인사하고 들어갔더니 어머니가 쓱 나를 잡아 끌면서 '이리 좀 와봐라' 하길래 은밀하게 안방으로 끌려가서 어머니의 귀금속 보따리를 물려받는건가 잠시 착각했으나, 혼자 걸음이 어려워진 어머니가
나를 의지한 것이었을뿐. 안방으로 끌려가서 '이제 나는 필요없으니 너 가져라'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착각한거였어
어머니. 그냥 제 손을 잡으신거였군요. 그냥요^^;;; 반가우셨나봐요. 어머니^^
아버님은 이제 면도하는 것도 귀찮다고 갑자기 수염을 기르고 계셔서 마음이 좀 그랬다.
저번부터는 머리 염색을 하지 않으시더니, 이젠 면도가 귀찮다하시니 그 마음 알것도 같다.
늙는다는건은 고집이 세지는 것도 있지만 그 이면에 체념도 있어서 놓아버리는 것들이 보이고
그것이 늙는것이구나 알겠다.
아버지 산소는 같은 자리에서 이장을 해서 봉분을 없애고 새로 단장을 했다.
올 해 윤달에 큰아버지가 이산 저산에 있던 고씨 할아버지들 산소를 한 곳으로 모아서 가족 납골묘를 만들고
우리 아버지는 원래 계시던 자리에서 봉분을 없애고 납골묘로 새 단장을 하신거다.
큰아버지 올 해 여든 여덟, 다리가 불편하신데도 산소 이장하는 거 주관하셔서 큰 일을 마치셨다.
아버지 산소 가면 꼭 들르는 큰 집은 정겹다.
글자를 읽기 시작했을 때는 시골에 살 때여서 간판을 보면서 글자를 복습할 일이 없었다.
큰아버지의 앉은뱅이 책상에 있던 책 제목을 읽으면서 아는 글자를 확인했었다.
일찍부터 법정스님을 큰아버지가 읽던 책에서 보고 알았었다.
추석에 인사를 드리러 가면 큰아버지는 낡은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으면서 하나도 시원하지 않은
캔맥주를 드신다. 구십이 다 되는 노인인데도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시니 오픈 서재에는 오토바이도 함께 있는
이상한 서재지만 나중에 큰아버지가 생각나면 이 사진을 봐야겠다 싶어서 찍어왔다.
보슬비가 하루 종일 내렸던 연휴 내내, 힘들었지만 시댁갔다, 아버지 산소갔다가 큰집 들렸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을 이런 일들이 내년에도 나는 피곤할 것이고 항상 같은 소리를 하면서 다닐 것이다.
나 '피곤하다. 피곤해. 시댁가는 거'
섭섭 '알어. 알어.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