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내가 커지는 시간

나경sam 2023. 3. 24.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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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내가 길어지는 시간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일하는 동안은 한없이 작아져 내가 없어졌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내 그림자를 보니

내가 이렇게 큰 사람이었던가, 길었던 사람이었나, 다시 나를 챙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여동생이 셋인 우리집

올 해 1학년 보낸 엄마들의 나이보다 내 동생들이 훨씬 더 언니들이다.

언니가 뭐야. 지금 엄마들이 보면 내동생들은 자기들 이모뻘일거다.

 

대부분 괜찮고 좋은 사람들이지만 어느날은 말도 안되는 걸로 진상을 부리는 부모들도 없진않다.

세대가 달라서 그런가, 다들 국민소득이 좋을 때 태어나서 혜택받고 자란 세대들이라 그런지

할말이 있으면 시원하게 하고, 따질것 있으면 앞 뒤 맥락없이 덤비는 어린 엄마들을 볼 때면

라떼꼰대 세대인 나랑 비교할 때가 있다.

나때는 말이야, 학교에서 전화만 와도 일어서서 인사하면서 받았다고 말하면 유머1번지나

개그콘써트같을까 싶지만 진짜로 그랬었으니 라때꼰대 아줌마 맞을거다.


엄마들이 얌전하면 관리자들이 힘들었고, 엄마들이 진상이던 해는 윗분들이 젠틀했고

두 그룹 모두 진상이었던 때도 있었다.

가끔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빌런이었을 때도 있었으니 결국 일이라는게 내가 하는 업무때문에 힘든게 아니라

업무를 둘러싼 외부적인 요인들이 나를 그만두게 하기도 하고 계속 일을 하게 할 수 있는 추진력이 되기도 한다

학교 선생님한테도 죽자고 덤비는 세대들이니 선생님도 아닌 전담사를 자기 집 육아도우미처럼 대하는 그들의 마음도

이해못할 바는 아니지만, 이 일을 한 첫 해 2009년에 봤던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엄마는 지금도 몸서리 처질만큼

힘들었었다. 

 

교실도 없이 복도 한 쪽을 파티션으로 막아놓고 여기에서 애들 보세요 했으니 사물함은 당연히 없었고

바닥에 던져놓은 윗 옷 바꿔입고 가는 것은 당연했던 환경이었는데 가장 마지막 시간에 가던 자기 아이 옷이

없어졌다고 찾아내라고 악을 쓰면서 나한테 따지던 그 엄마의 얼굴은 잊을 수 없는 얼굴이 되었다.

 

바꿔입고 갔으면 남은 옷이라도 있어야 되는데 남은 옷도 없고 누가 바꿔입고 갔는지 아이들은 모른다고 하고

엄마들이 알아차리고 말하기 전에는 모를 일이라 좀 기다려주시면 찾아드릴게요 하고 아무리 말을 해도

다 필요없다, 무조건 찾아내라, 소리지르던 그 엄마 아마 잘 살고 있을거다.

남한테 하고 싶은 소리 그렇게 다하고 살면 스트레스는 없을테니 잘살고 있겠지싶다.

아침에 출근하려고 지하철 기다리고 있으면 꼭 그 시간에 맞춰 옷찾아내라고 닥달을 했었다.

출근하기도 싫게 말이지, 꼭 지하철 기다리고 있을 때 전화하던 그 아줌마, 지금도 치가 떨린다.

며칠을 옷 으로 들볶이다가 학교에 전체 메신저 돌리고 1학년 선생님들이 나선 끝에야 바꿔 입고 간 아이를 찾아냈고

좋지도 않았던 물 빠진 녹색 쟈켓은 그 아이 엄마에게 갔다.

명품쟈켓을 잃어버렸어도 그러진 않았을거다.

명품도 아닌 그냥 물빠진 낡은 녹색 쟈켓이었는데


돌봄선생이 애들을 안보고 헛짓을 하니 옷도 못챙겨줬다. 선생님 애들을 안보고 바닥에 누워 자고 있더라. 

행정실로 교무실로 전화를 해서 내 욕을 하던 그 엄마도 2년을 연속 돌봄교실에 보내고 3학년이 되어서 돌봄교실 못오는 학년이 되었을 때는 살살 웃으면서 우리 애 1년 더 다닐 수 있게 해주시면 안되겠냐며 부탁을 하는데

속에서 쌍욕이 저절로 나왔지만 웃으면서 갚아주었다.

'그러게요. 더 다닐수 있으면 좋겠는데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좀 잘하지 그러셨어요'


그래도 그 여자가 학교 선생님이나 나나 차별없이 공평하게 못되게 군게 웃기긴 하지만 2009년도에 만났던

그 엄마만큼의 빌런을 이후로는 만나질 못했으니 대단하신 똘끼의 엄마 맞긴하다.

그때는 그 엄마도 힘들었지만 윗사람도 힘들어서 신부님께 고백성사까지 했었다.

한 해에 집약적으로 한 사람을 미워하면서 욕하기가 처음이었을것이다.

그걸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그만두고 돌아돌아 세 번 떨어지고 네 번째 합격해서 다시 같은 일을 하고 있다.

 

그때만큼 욱할만큼의 힘든 사람도 없고, 악당 엄마도 없어서 일하기 좋은 환경이지만

돈 벌러 나왔을 때는 내가 가진 나보다 작지 않으면 하기가 힘들때가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무리 그림자지만 아침에 나올 때보다 훅 커진 그림자를 보면서 

나도 이렇게 큰 사람이었구나, 나도 자랑스러운 우리 아이들의 엄마이고 섭섭군이 죽고 못사는

부인이며, 우리 엄마 황여사의 우리 큰 딸이었음을 퇴근 길에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