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싸가지 며느리 완결 편

나경sam 2023. 1. 31. 09:32
728x90
반응형

생각해보면 그렇다.
나는 섭섭에게 좋은 사람이었을까
결혼이란 좀처럼 들어가지지 않는 바늘 귀를 맞추는 일 같다.

석달도 안만나고 결혼을 했으니 시댁의 분위기는 결혼하고부터 알아가야했고
설령 알고 결혼했어도 비포와 애프터의 분명한 차이가 결혼생활일터이니
어찌 갈등이 없었겠는가

지금 내 나이쯤해서 나를 며느리로 보신 우리 시어머니도 한때는 젊으셨으니
본인의 색깔이 분명하셨다.
더구나 내가 큰며느리이니 혼수로 해간 이불색깔까지 본인 마음에 드네 안드네 하셨던 분이다.
송천동 집들이에 오셔서 우리 엄마가 파출부처럼 일할 때, 어머니는 옆에서 드시기만 하시며
"사부인닮아 딸 낳으면 어쩐대유"라고 하셨던 우리 어머니의 망언은 지금까지 우리 엄마의
분노 게이지를 1에서 10000으로 상승시키며 황여사의 혈압을 수직 상승시키는 사건이지만
누구나 그러하듯이 내게는 시어머니지만 섭섭에게는 그저 엄마다. 우리 엄마!
이제 어머니는 완전히 늙으셔서 그냥 할머니도 아니고 노인이다.

며느리가 셋이지만 내가 큰며느리여서 그랬는지 나한테는 당신 성깔을 드러내셨다.
둘째에게 그러기에는 둘째 아들의 블로킹이 철저했다.


동서가 설겆이 하고 있으면 집에 가자고 동서를 닥달해서
서울가던 놈이 둘째 아들이었고,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며 웃으면서 고무장갑을 벗는 동서를 보면서
결혼은 저런 놈이랑 했어야 했는데 부러움에 침을 흘렸다.

우리는 전주살 때라 어머니 기준에 우리는 옆에 사는 사람들이었고
서울사는 동서네는 가야 되는게 옳은 일이었지만
우리는 전주산다는 이유로 아침먹고 가려고 하면, 점심 먹고 가라, 점심 먹고 가려고 하면
저녁먹고 가라, 저녁 먹고 나면 자고 가라, 저녁 먹고 이제 가야지 끙끙 속으로 앓고 있으면
"섭섭이는 5년동안 통근도 했다"로 결정타를 날리셨다.
블로킹 기술이 딸렸던 섭섭은 어머니의 결정타가 데드볼이 될 망정 그걸 맞고 나를 데리고
자기 집에서 하루를 더 잤다.
데드볼은 맞고 출루라도 하지

어머니에게 붙들려서 하룻밤을 더 자고 전주 집으로 갈 때 내 입은 앞으로 너무 튀어나와있어서
새부리인지, 사람 입인지 구별이 안갔을거다.


삼십년에서 일 년 빠지는 옛날 이야기다.
지금은 조류에서 사람이 된지 오래, 하고 싶은 말은 될 수 있으면 참지 않고 말하고
이번처럼 가고 싶지 않으면 설에도 가지 않는 싸가지 며느라기 챤스도 쓰면서 살고 있다.

기침만 해도 허리가 아프기도 했지만 지나고보니 사소한 일이었고
그당시에는 대단한 일이었던 부부싸움이 원인이었다.
명절에도 문 여는 한의원에 가서 추나치료도 받고 집에서 쉬겠다고 한마디하고
진짜로 안갔다.

섭섭은 명절 당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시댁으로 갔고
전화까지 안드리는 건 너무 막가자는 것같아서 허리가 아파서 못내려가고
섭섭만 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워메 세상에 뭔 일이여, 까칠+금쪽이 시아버지가 나의 아픈 허리 걱정을
몹시 심하게 해주시는데, 갑자기 섭섭따라 시댁에 안 간걸 굉장히 후회했다는거 아냐


시어머니도 그렇다.
어머니한테 틱틱거리면서 못되게 굴때도 있는데 며느리 셋 중에 나한테만
강아지 강아지 그럴 때가 있으셔서 하마터면 멍멍하고 개짖는 소리 낼 뻔한 때도 있었다.

우리 셋째한테 강아지라고 하시는데 나를 수민이로 착각하신건지
언젠가 나한테 강아지라고 자꾸하셔서 멍멍하면서 없는 꼬리 흔들뻔했었는데
두 분 다 늙으셔서 예전 파이팅 넘치는 성깔들이 없어진것같다.

섭섭은 또 어떤가!
나같으면 자기 집만 들렀다가그냥 올라올텐데, 벨도 없는 인간이 우리 아버지 산소에 혼자 들러서
절하고 산소인증샷을 찍어 보내더니, 항상 들르는 나의 큰 집에 들러서 큰아버지한테 인사까지 하고
우리 친정에 가서 노닥거리다가 엄마가 싸준 명절 음식들을 트렁크가 터지게 챙겨서 올라온거다.

참으로 알 수 없는 부부의 세계다.
섭섭이 얼굴만 섭섭하지 마음씀은 나보다 낫다는 걸 그는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