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도초과
살다보면 한도초과인 날이 있다.
오늘 - 그런 날
오늘이 그냥 오늘일리가 있겠는가
그냥 그동안 쌓여왔던 것들이 오늘 물 독이 찬거지
동지지나면 해가 좀 길어지나
오늘 레지오 단장님이 팥죽을 주시겠다고 했는데...
작은 일에 마음을 묻고 지나갔던 일을 꺼내 생각하면서
얼었던 마음을 녹인다.
나만 아이들을 관절로 키운게 아니다.
서른 하나에 아빠가 된 초혼이 분명했던 남편은
잠을 안자고 승범이 분유를 주고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초저녁 잠이 많았던 남편이 일찍 자면
내가 새벽까지 아기를 봤고
다시 남편이랑 교대를 하고 잤다.
우리는 잠드는 시간이 달랐기 때문에
육아에 최상의 파트너였다.
정확히 한 시간 반에 한 번씩 먹었던 분유타임
너무 졸려서 아기 입인지 볼인지도 모르고
졸면서 분유꼭지를 볼따구에 대줬더니
입이 분유 흐르는 쪽으로 돌아가던
아기 얼굴이 새벽 잠결에도 우스웠다.
조카도 없었던 스물 여덟이 뭘 알았겠는가
낳아놓으면 크는 줄 알았던 아기가 그렇게 우는 귀신일줄
잠못자게 하는 각성제인줄 모르고 낳았고
둘째와 셋째는 알고도 낳았다.
일요일이면 리틀타잌스 붕붕이를
대전 선화동 언덕길을 바퀴소리 내면서
밀고 다니던 남편은 지금 생각하면
아들바보였다.
일요일 아침 대전 선화동 단독주택 부잣집 동네를
선화동에서 이천칠백짜리 전세살던 우리 부부는
리틀타익스 붕붕이 안에 네살 아들을 태우고
바퀴소리 시끄럽게 선화동 골목과 언덕길을 누볐다.
연년생 두 딸이 분유를 살림살이 축내가면서
먹었을 때는 (좋은것만 주면 그게 최고인줄 알고
외제 분유 씨밀락을 먹였다.)
승범이는 임페리얼 분유를 줬는데 한 통에 만원 넘었던
비싼 분유였는데 먹성이 좋아서 사흘이면 한 통이
떨어지길래 애들 분유값이 소고기보다 비싼 걸
그때 알았다.
셋을 분유 수유했으니 남편은 한밤중에 일어나 잠결에
정수기에 대고 물을 계랑할 때
아이들이 120cc 먹을 때는 한 번에 120CC
150cc로 양이 늘면 한 번에 150CC로 물을
받는 초능력자였다.
그의 사전에 두 번 계량은 없었다.
그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 손에 초강력 센서가
붙어있던 그 시절의 섭섭님은
생활의 달인처럼 분유 물 계랑의 달인이었고
손아래 동서들에게 그걸 자랑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웃긴 일이고^^
나도 남을 힘들게 했던 때가 있었을 것이고
나도 남에게 시달릴 때가 있다.
마음이 고단하니 몸은 더 축이 나는 갱년기다.
필라테스로 몸을 찢는 것에 익숙해지는
두 달차 필테입문기지만
몸이 힘든게 차라리 낫다 싶을 때가 있다.
발바닥에 불나게
부상에 울면서
실적을 올린 셋째는 연봉이 500올라서
시청 계약서에 다시 도장을 찍었고
자식 둘은 프리로 돈을 번다.
가고 싶어도 갈 곳이 적고
대학 입학보다 경쟁이 불나는게
음악하는 애들 취업자리라
본인들 속이 부모보다 더 하것지 싶으니
애들 방만 봐도 마음이 에릴 때가 있지만
잔소리는 엄마라 어쩔수 없다.
스물 세살 조카가 취업을 해서 첫 월급을 탔다고
한우셋트를 보냈다.
기저귀 열번도 넘게 갈아줬고
초등학교 방학이면 내가 세 번 쯤 데려다 지냈던 아이였다.
고등학생때는 일찍 출근하는 동생 부부가
깨우질 않고 갔더니 학교도 안가고 자고 있다고
나더러 가서 깨우라고 해서 아침에 뛰어가서
깨워서 학교 보낸 놈이다.
이모가 깨워서 학교보내줘서 고맙다고
취업할 때 써준 자소서가 도움이 됐다고
여러가지 이유로 비싼 한우를 받았다.
아침에 엄마랑 통화를 하는데 눈물이 났다.
"어여 느그 승범이도 취직을 해야 될 텐데 내가 걱정이다"
엄마 말은 그랬다.
승범이를 진심으로 걱정해서가 아니란다.
승범이가 본인 딸의 자식이니 딸 걱정이 엄마 걱정이라
손자 놈 취직 걱정하는거라고, 우리 딸이랑 관련없는 놈이면
아무 걱정안한다고, 맞는 말이다.
딸아 자식걱정은 죽어야 끝난다. 에서 눈물이 또르르
집에서 내려오는 계단이 꽁꽁 얼어서
애들이 미끄러져서 대가리 깨질까봐
엄마가 준 좋은 천일염으로 계단을 절여놓고
출근을 하면서 소금에 뒤덮인 계단을 보면서도
얘들아, 조심해서 다녀, 계단 미끄러우니까
카톡으로 날려놨어도 한걱정
아 진짜 우리 엄마 말대로 죽어야 끝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