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은 약사에게 축구는 모로코 상담은 여동생에게
감기는 일 년에 인사치레로 한 번 걸리면
많이 걸렸다싶게 튼튼한 아줌마였는데
이젠 아니다.
목감기로 오일 정도 고생하고 월요일이 되었다.
지난 주에 내 일도 아닌 일로 맘고생을 좀 하고
사람때문에 살짝 스트레스받고
그럴 때는 막내 여동생이 나의 훌륭한 조언자라
일곱살 어린 여동생에게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
사람의 이야기를 했더니
언제나 지혜로운 재판관인 여동생의 조언에서
살 길을 찾게 된다.
간호학과 졸업하고 종합병원 응급실 간호사 3년 재직후에
지금은 공무원 이십년차에 근접한 짬밥이니
나이는 나보다 일곱살 어려도 직장생활이나
일의 강도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는 내가 돌봄 1학년이라면
여동생은 늙은 할머니쯤 될 것이다.
지방 대학 4년제 간호학과 졸업후
서울 종합병원에 취직했으니
우리 식구들에게는 기쁜 일이었지만
그 후로 그 아이가 헤쳐나갔을 힘듬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나눌 일이 없었다.
딱 한 번, 호주에 가서 간호사 면허 취득하고
거기서 살고 싶다고 했던 것 같다.
(그런 선택을 하고 싶었을 때 그 아이는 충분히 힘들었던것같다)
힘든 간호사 생활이었겠다 나중에 짐작할 수 있었던 것들은
간호사 태움이나 그들만이 가지고 있던 특별한 조직문화속에서
그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겠나 추측하는 정도였지
나는 잠시나마 여동생이 가졌을 스트레스에 대해서
가늠할 수도 없다.
일년 차 간호사 급여가 그무렵 십년이 넘었던 남편의
공무원 월급과 비슷하거나 높았던 거에 놀랐을 뿐
그 돈을 수령하기까지 삼교대로 고생하고
응급실에서 받았을 엄청난 과부하에 대해서는
나도 그렇지만 모두들 알려고 하지 않았고
알고 싶어도 아는게 없어서 물을 수 없었다.
그런 세월을 헤쳐나왔으니
내가 스트레스 받는 일에 대해서 상담을 하면
상담자판기처럼
맞춤 처방전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옳은 소리, 바른 소리하면 귀양간다고
조언해준 사람도 여동생이다.
임금도 충고는 싫어해서 귀양을 보내니
언니는 옛날같으면 귀양각이라고 뼈때리는
말을 해줬어도 남들같으면 머리끄댕이 잡고 싸울
이야기도, 동생이라 고맙게 들렸으니
피를 나눈 자들의 한 편 먹음이란 이렇게 끈적거리는 거다.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 처방은 동생에게 받고
공부가 되었지만
약은 약사에게!!
목감기라 대수로 알고 병원을 안가고 약국약으로
지냈더니 길게 오일 정도 새벽기침으로 힘들었다.
모국어로 살지 않았던 내 인생의 1년
2018년-2019년에는 아프다는 증세의 깨알같은 표현을
일본어가 아니라 한국말로 하고 싶었던 때도 있었는데
막상 우리나라 말로 나의 아픔을 호소할 수 있게 됐을 때는
병원을 안가고 있다.
대추와 생강, 마스코바도와 꿀을 넣고 푹 끓여서
이틀을 마셨더니 약국 약 같은 효과가 약보다 있어서
기침이 잦아졌고 몸상태가 그저그래도 월드컵은 봐야겠어서
(축구는 역시 남의 나라 축구가 재미있는게 진리다)
혼자서 새벽 4시에 일본축구부터 계속 보는 깨알 재미가 있었다.
모로코 응원합니다!!
잘 난 골키퍼 하나가 운동장에서 뛰는 선수 몇 몫을
한다는 걸 모로코 축구보면서 알았다.
승부차기할 때 방향이 딱 맞아서 막아낼때
골키퍼들의 표정을 보면
그게 바로 드라마다.
아프리카 팀 최초의 4강 진출 팀이라는 이유 하나로도
응원할 이유가 충분하지만
골키퍼때문에 우승을 응원해보기는 처음이다.
식민지배를 받았던 스페인을 승부차기로 작살을 냈고
포르투칼전에서는 호날두를 울렸다.
프랑스가 아무리 강팀이라고 해도
모로코가 우승할것같다.
우승했으면 좋겠다.
설령 지더라도 이미 이겼지만
모로코를 응원한다.
웃는 자 영원히 웃을 수 없고
우는 사람 계속 울지 않는다는 걸
축구가 가르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