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비아 뉴튼 존이 죽었다.
내가 좋아했던 미쿡 여자 가수였고
우리 수민이가 들리는대로 따라 불렀던 팝송
돌아가신 분께 예의는 아니지만
나는 이 가수가 죽은 게
돌아가셨다는 표현보다 죽었다 라고 표현하는게
더욱 내 마음에 와 닿는다.
중학교때 들었던 로라 브래니건의 글로리아에
정신이 홀려서 없는 돈에 그 여자의 테이프를 사서
늘어지도록 들었던 게 팝송 입문이었다면
올리비아 뉴튼존은 입문을 지난 다음 단계였다.
입문 다음 과정이 초보 단계라면
중학교 때 시작 한 나의 팝송 덕질은 입문에서
초보의 단계로 끝났고 중수나 고수의 단계로는
넘어가질 못했다.
가요로 갈아탔기 때문이고
진정한 고수를 고등학교 1학년 때 영접했기 때문이지
우리반 유완이는 키가 커서 번호가 60번대였던것같다.
키도 컸지만 애가 뭔가 카리스마가 있어서
어지간한 일에는 쫄지않는 그런 멋짐이 있었다.
유완이가 적어준 F.R .David의 Word는 군산여고 1학년 9반
어지간한 여자애들은 다 들고 다니면서 불렀고
유완이는 우리반의 팝송 여왕였으며
실장이 잘난 체하면서 자습시간에 떠든 사람 적어서
담임한테 일른다고 할 때 웃기고 있네 하는 표정으로
실장을 꼬라보던 애가 유완이였다.
멋지지않아^^
책상 아래로는 하이틴로맨스를 숨겨서 읽고
쉬는 시간이면 유완이의 한글 팜송에 빠져
1학년 9반 여자애들은 바빴다.
없는 시간 쪼개 매점도 가야했고
둘째 시간 끝나면 점심도 먹어야했으니
학원을 안다니던 그 시절에도 하루는 바빴다.
에프알 데이비드의 팝송을 유완이 덕분에
지금까지도 앞 부분은 부를 수 있다.
어쩜 나의 짧은 지식이나 기억들은 그 때 만들어졌던걸로
지금까지 쓰고 있는 것 같다.
비가 와서 수재가 났는데
올리비아 뉴튼존이 죽었다는 것도 나는 슬프고
대통령이 퇴근을 해서 아파트에서
상황 지시를 했다는것도
슬
프
다.
공공기관인데 늦게 출근하지않았느냐며
세종청사 진짜 공무원 여동생이 나한테 물어봤다.
아니, 아마 전쟁나도 돌봄교실은 천막 치고서라도 할거야
대답했다.
공무직인 우리도 그런 마음으로 하는데-.-
비가 오니 우리집도 시원찮고
올리비아 뉴튼존이 이제 이 세상 사람아닌게
마치 내 젊은 날의 한 챕터가 사라진것같아서 슬프고
그렇네.